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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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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요

힌두교는 인도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도, 네팔, 발리의 대표적인 종교다. 2010년대 현재 10억3300만 명(전 세계 인구의 15%)이 믿고 있다.

 

2.지역

세계의 힌두교 분포 민족 종교의 특성상 인도와 네팔에서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준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국의 힌두교 신자들은 다른 세계 종교들처럼 그 나라 국민들에 의해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인도인들에 의해 믿어지고 있다. 물론 인도는 유럽보다 크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다민족 국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힌두교는 인도의 크고 민족적인 종교다. 네팔에는 인도 외에도 많은 종교가 있다. 네팔은 2008년까지 힌두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러나 2008년 민주화 이후 외교관계는 없었고 2015년 헌법은 네팔을 세속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도 힌두교 인구가 많다. 발리에는 힌두교도가 많지만, 인도 이민자가 아닌 남아시아 이외의 토착민들이 힌두교를 믿는 경우는 이번 밖에 없다. 동남아시아(특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힌두교는 아마도 인도 문명의 종교로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선교가 쉽지 않다는 교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도와 네팔에 한정돼 있고, 해외선교가 미약한 것 같지만 사실 과거 인도 문화와 함께 동남아시아에 소개됐다. 태국 역사상 왕들의 이름 중 라마세는 새로운 힌두교 라마에서도 유래되었다. 그러나 해외선교에는 적합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발리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모든 동남아 국가들은 불교와 이슬람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래도 내수만 해도 10억이 넘는데 가까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피지, 가이아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리셔스, 수리남 같은 많은 인도인들은 힌두교의 영향력이 크다. 총인구는 세계 인구의 15%인 1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스리랑카도 상당히 많은 힌두교도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는 700만 힌두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인도 힌두교도와는 다른 인도네시아화된 힌두교도로는 그들을 발리 힌두교도로 부른다. 발리 힌두교는 카스트 제도가 없다. 이슬람과 민간신앙에 따라 계급제도가 사라지기 때문에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힌두교를 다른 종교로 만든다.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로 철학적 외모가 강하다고 하는데, 식히즘은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불교와 공통되는 분모는 많지만 불교는 힌두 신을 고호신이나 덴닌보다 낮게 만드는 반면 힌두교는 부처님을 비슈누의 화신으로 취급하고, 그들 사이에는 비밀스런 갈등이 있다. 서로의 세계관을 끌어들이는 조짐이 뚜렷하다는 것은 두 종교가 서로의 국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힌두교와 불교를 관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불교는 사마나에서 사마나()의 시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교리의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논란은 예술인, 즉 고정되고 영구적인 장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단순히 해명하고 자신의 실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힌두교는 아트만을 인정하고 나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반면 불교는 아나트만이나 아나타를 고려하며 나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가()라는 말은 아나트만에서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한편 힌두교 예술가의 역할을 할 때는 무가()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밖에도 불교는 카스트, 금욕훈련의 목적과 방법, 중도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힌두교 주류와는 차이가 있다.

 

3. 역사

힌두교는 불교, 이슬람, 기독교 세력의 지배하에 수백 년의 경험 끝에 밀려나기보다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붕괴나 큰 정체 없이 번성해 온 유일한 다신교다. 인도라는 이름 자체가 힌두스탄과 동의어인데, 인도인들은 인도를 바라트나 힌두스탄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을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불교는 왕실의 도움으로 마우리아에서 쿠샨까지 성장하였고, 이슬람은 군대를 이끌고 북서쪽에서 침략하여 델리-술탄 왕조 시대부터 무구르 제국까지 인도 북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였다. 기독교의 경우 대영제국에 의해 인도 제국이 설립되었고, 인도 반도 전체가 대영제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 세 종교의 영향을 받더라도 토착 종교를 완전하게 갖춘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힌두(Hindu)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인 신두(Sindhu)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이언트(Giant water)는 바다와 큰 강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큰 강은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강이다. 힌디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 기록에서 처음 사용되었지만 페르시아어로 신두를 힌디라고 불렀다. 기원전 515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다리우스 1세가 인더스 강 유역 일대를 정복하여 힌두라고 불렀다.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힌두라는 말은 인더스 강 유역 너머 동쪽의 갠지스 강 유역 일대를 가리키기 위해 온 것인데, 이것이 전통적인 범위였다. 즉, 힌디는 데칸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 사이의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 그리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힌두교의 원래 형태는 브라만교였는데, 그것은 아리아인의 다신교의 발달이었다. 참고로 고대 인도의 하늘의 신 도야우스는 그리스의 제우스, 라틴어의 데우스, 북유럽 초기의 티레와 어원이 같다.

 

브라만교를 발전시키고 확립한 것은 힌두교였고, 고대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브라만주의는 남아 있지 않고 힌두교로 진화했고, 브라만교는 인도의 생활 방식과 사회 구조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브라만과 힌두교의 관계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와 비슷하다. 같은 아리아인이 세운 페르시아(이란)에서 이 브라만교는 후에 조로아스터교로 발전하여 일신교로 되었다.

 

원래 코카서스 근처에 살다가 많은 파생어를 남긴 유목민족은 나중에 서양으로 진출했지만 그들의 종교는 브라만교였고 경전은 베다였다. 베다는 종종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적들의 패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들은 유목민 아리안들이 보는 대로 인더스 문명과 그 정복에 대해 묘사한다.

 

이리하여 아리아족의 종교인 브라만교는 이후 붕괴된 인더스 문명의 요소를 수용하면서 계속 발전하였다. 힌두교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시바의 경우 학계에서는 그가 실제로 인더스 문명의 토착신이라는 가설이 있으며,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화신인 크리슈나도 토착민의 신일 가능성이 높다. 두 신 모두 피부가 검거나 푸른색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백인 아리아인과 전혀 다른 인종적 특징을 보인다. 카스트 제도 같은 것은 정복자인 아리안족이 자신들의 지배하에 있는 백성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후 불교나 자이나교 등의 종교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기원전 4~6세기 굽타 왕조 때 교리가 성립된 이후 현재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브라만교는 샨카라의 베단타 철학이 등장한 8세기경 힌두교로 개종된 것으로 생각된다. 샹카라는 일부 마하야나 불교 사상을 받아들여 봉가 이치뇨를 주창했는데, 불교와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점차 인도에서 사라졌다. 형이상학적 베단타 철학으로 인해 다소 사색적이었던 힌두교는 11세기경 출현하여 신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되살려 오늘날의 종교로 발전시켰다.

 

이후 다신교와의 유일신론적 경쟁관계인 이슬람이 서양에서 도입되면서 이들은 군사력을 앞세우고 인도를 장악했다. 그 결과 힌두교 신앙을 유지하는 인도에서 작은 왕국과의 종교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 때문에 무구루 제국과 같은 이슬람 왕조는 인도를 지배했지만 힌두교는 인도에 뿌리를 두고 있어 중동과 달리 이슬람이 인도를 지배하지 않았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여 종교 문제로 인도와 분리되었고, 파키스탄 전역에 거주하던 힌두교도들은 인도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도의 이슬람 세력은 위축되고 힌두교는 인도인의 절대다수가 믿는 종교가 되었다.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양국의 테러는 너무나 흔해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인도를 지배했던 힌두교는 이슬람 왕조의 지배 아래 받은 것을 돌려주려 하고 있다. 파키스탄 무슬림의 경우 힌두교는 우상을 숭배하고 종교는 인도를 적대시하는 나라를 분열시키므로 힌두교에도 적대적이다. 물론 영토와 종교권이 100% 일치하지는 않으며, 파키스탄에는 힌두교도들이 꽤 많아 이들을 심하게 억압하고 있다. 테러는 힌두교 사제들을 살해하고 사원을 공격하고 있으며 카라치나 라호르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는 여전히 상황이 살아 있다. 제도적 차별도 가해져 힌두교도들은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지가 해제된 것은 2017년) 그 결과 대부분 무슬림인 척하며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종교의 자유를 위해 인도로 이주하는 파키스탄 힌두교도들이 계속 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녀들을 인도에서 유학시켜 땅을 고른 뒤 인도로 이주시킨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1% 정도지만 힌두교도들은 5%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힌두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과 카슈미르에 대한 영토 분쟁, 핵 개발과 군비경쟁을 준비하는 이웃 인도와의 적대관계와는 반대로 인도와 같은 힌두교도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또 다른 남아시아 국가 네팔과 나쁜 사이가 아니다. 네팔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지 않는 먼 나라다. 스리랑카의 타밀 힌두교도, 인도네시아 발리의 힌두교도 역시 파키스탄이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파키스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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