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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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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또는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는 16세기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인 교회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기독교의 한 전통이다. 11세기 교회 대분열로 공교회(보편교회) 중심이었던 지금의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가 분리되었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내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반대파인 천주교회와 찬성파인 개신교가 분리되었다. 이후 기독교의 가장 주된 종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정교회, 천주교회, 개신교회로 형성되었다. 개신교 내부적으로 크게 개선주의인 개신교 공교회주의의 교단들과 재건주의인 개혁주의와 재세례파 등의 교단들이 있다.

 

개요

16세기 서방교회의 사회, 정치적 문제로 인한 개혁, 즉 종교개혁 요구에 대하여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었고, 서방교회의 종교개혁을 찬성하고 주도한 복음중심주의자들이 개신교회로, 서방교회 종교개혁을 반대한 교황중심주의를 지지한 자들이 천주교회로 양분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루터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나, 사실 10세기 창부정치와 14세기 아비뇽 유수 사건 등으로 서방교회 개혁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15세기와 16세기 서방교회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루터 전후에 다양한 지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복음을 중심으로하는 개혁운동들이 전개되었다. 개신교는 초창기에는 특정 교파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복음을 다시 회복하고 복음을 교회의 중심에 두고자 하는 변혁 활동으로 서방교회 내부의 기독교 운동이었다.

 

유럽지역에서 유럽 본토인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지역에서는 개혁반대파 제도권의 교황중심주의자들이 복음주의로 개혁 찬성파들의 주장을 지적하며 찬성파를 복음주의자로 칭했으며, 현재도 유럽 본토에서 복음주의 교회는 개신교회 전체를 의미한다. 영국 지역에서는 서방교회의 개혁 반대파와 연계된 정치제도에 항의(Protest)하며 등장한 모든 운동과 전통을 가리키며 항의자를 뜻하는 프로테스턴트(protestant)로 칭하였고, 영어권에서 현재 개신교회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개신교회의 전통은 종교개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온건적 개혁과 급진적 개혁의 주장이 등장하였다. 온건적 개혁의 개선주의 신학과 급진적 개혁의 재건주의 신학의 흐름이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점차 구분되었다. 종교개혁 초기 시절에 초대 교회와 공교회의 전통을 따라서방교회의 전통의 잘못을 개선하고자 하는 개선주의 신학으로 루터를 따르는 루터교회가 형성되었다. 초대 교회와 공교회 전통을 강조하며 서방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재건주의 신학에서 츠빙글리, 칼빈 등을 통해 개혁교회와 급진적 재건주의인 재세례파 교회가 형성되었다.

 

이후 개선주의 신학적 교단으로 성공회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구세군교회, 오순절교회 등이 형성되었고, 재건주의 신학적 교단으로 장로교회, 침례교회, 회중교회, 퀘이커 교회, 메노나이트 교회 등이 형성되었다. 오늘날의 주요 교단 형성의 신학적 배경 이외에도 시대적인 신학적 흐름과 변화인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오순절주의, 미국의 대각성 (운동) 같은 흐름들도 모두 개신교 전통에 포함된다. 이처럼 정교회나 천주교에 비해 다양한 흐름들이 공존하고 서로 영향을 주며 분류/합류되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개신교 내의 교파 분열의 역사와 신학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복잡하지만, 대체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동의,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성직 구조나 정치제도 보다는 만인 제사장설을 따르는 성직 이해와 그에 따른 교회제도인 감독제(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회 등)와 원로제, 회중제의 다양한 교회제도를 채택하였다. 성서에 나오지 않는 성례전에 대한 반대(천주교회는 세례, 성체, 고백, 견진, 혼배 등 7개, 개신교의 성례전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성만찬, 세례 2개이며 그 외는 예식임)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개신교의 기원과 용어

개신교라는 표현은 고칠 개 와 새롭게 할 을 쓴 한자어 표현 즉 종교개혁 전통을 강조한 표현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신교의 의미로 생각하고 사용하나, 기독교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번역한 말이기 때문에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등과 함께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모든 종교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 개신교도를 16세기에 칭하던 용어인 복음주의자,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개신교로 사용하기도 한다. 유럽지역에서 사용하는 에반겔리세(Evangelische)라는 용어는 개신교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16세기 전통 복음주의와 19세기에 영미의 보수적 개신교회가 중도 및 진보적 개신교회와 분리하기 위해서 자칭하는 용어에서 등장한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에서 주장하는 복음주의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개신교를 뜻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자의 의미)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곳이 독일의 슈파이어(Speyer)이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Reformation)이 1517년에 시작되었다. 1529년 증오심을 가진 가톨릭 실세들과 독일 제국의 일부 군주들이 슈파이어에 모여 제국 의회를 열고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루터주의자들의 활동을 복음주의자로 부르지 않고, 제국회의의 의회의 지침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지칭하며 사용했고, 이 활동을 금지하는 행위로 포고문에 기록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5세(카를로스5세) 치하에서였다. 슈파이어 의회(Diet of Speyer)의 명목상 목적은 터키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키 위해 모인 회의였지만, 실제로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거나 추종자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복음주의자, 즉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은 종교개혁가들을 핍박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칼 5세에게 교황파, 즉 종교개혁 반대파들의 주장이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김현배에 따르면 제국 의회는 더 이상 루터의 종교개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공포하면서, 명령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황제의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한 1521년 5월 보름스 칙령을 강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이에 루터의 추종자들은 다수의 가톨릭파에 의해 결정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의사항을 반대하였다. 루터 지지파 제후들 역시 침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종교개혁 진영 전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판단했으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권위에 복종할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루터파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던 1526년 의회 결정을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1529년 4월 25일, 교회와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칼 5세의 종교정책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문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일치단결해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정에 대해 황제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황제와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항거했으나 이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항의한 사람들은 Protestant(항의하는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것이 현재 영어권과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되었다. 당시 항의서에는 작센의 선제후 요하네스, 헤센의 영주 필립, 브란덴부르크-안스바하의 게오르크, 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안할트의 볼프강 등 5명의 군주들과 독일 14개 제국 도시들의 대표들이 서명했다. 루터의 개혁운동을 지지했던 복음주의자들이다. 14개 도시는 스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울름, 콘스탄츠, 린다우, 켐프텐, 뇌르들링엔, 하일브론, 이스니, 생 갈렌, 로이틀링엔, 바이센부르크, 빈추하임, 멤밍엔 등이다.

 

개신교의 종교개혁 신학

서방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종교개혁신학이 16세기에 나타났으며, 종교개혁 신학은 복음을 교회의 중심으로 해야한다는 복음주의로 발전하였다. 이 복음주의적 개신교 신학은 양대 축인 개선주의와 재건주의 개신교 신학 전통으로 형성되었다. 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초기에 형성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신학은 서방교회를 위한 개선주의 신학이었고, 개선주의 신학을 수용하여 스위스 중심으로 형성된 츠빙글리와 칼뱅의 종교개혁 신학과 재세례파 신학은 서방교회를 위한 재건주의 신학으로 발전하였다.

 

서방교회 개혁에 대한 신학적 개선주의는 서방교회 신학전통에서 공교회(보편교회) 전통에서 벗어난 사항을 제거하고, 서방교회 전통에서 기독교적이지 않은 요소를 바르게 잡고자 하는 신학 전통으로 흔히 개신교 공교회주의(보편교회주의) 신학이라고도 한다. 신학적 재건주의는 11세기 이후 형성된 서방교회 신학전통에 비기독교적 요소가 너무 많아서 개선보다는 초대교회와 7세기까지의 보편공의회를 따라 새로운 공동체로서 재형성하여 재건하고자 하는 신학전통으로 흔히 개혁주의 신학이라고도 한다.

 

개선주의 즉 개신교 공교회주의 신학의 영향은 루터교회에서 성공회교회, 감리교회, 구세군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등의 교단으로 형성되었고, 재건주의 즉 개혁주의 신학의 영향은 개혁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침례교회, 퀘이커교회, 메노나이트 교회 등의 교단으로 형성되었다.

 

교회구조

개신교회의 등장으로 서방교회에 계급적 교회구조에서 공교회구조의 재조명, 새로운 구조의 교회가 등장하였다. 계급적 획일성을 벗어난 다양성을 지닌 기독교 교회가 나타났다.

 

공교회 구조의 재조명, 서방교회 즉 로마교회의 절대적 계급주의의 교회구조에서 벗어났다. 종신제가 아닌 감독(주교)과 대감독(대주교)가 임기제인 연합구조의 교회조직을 강조하는 공교회구조로 재조명하였다. 초기 종교개혁 교단이었던 루터교회와 영국성공회는 전통적 공교회제도를 수용하며, 절대적 대감독(대주교)이 아닌 연합적인 공교회(보편교회) 구조의 교회로 되돌아가도록 노력하였다. 이는 이후 등장한 감리교회나 구세군, 오순절 교회 일부에서도 감독들은 임기제로 선발되고, 공교회 감독의 임무를 따라 수행하는 초대교회의 구조를 재형성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교회구조로 원로구조의 교회가 등장하였다. 원로나 장로를 선발하여 그 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소명이 있는 이가 목사의 역할을 하는 원로구조의 교회 구조가 칼뱅에 의해서 형성되기 시작했고,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성결교회, 오순절 교회 일부 등에서 이를 따라 교회 구조를 형성하였다.

 

회중제도의 교회가 형성되었다. 영국성공회의 정부 중심 제도적 교회가 공교회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더욱 신도들의 모임인 회중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회중을 중심으로 회중 가운데 원로 또는 장로를 선발하여 목사의 역할을 맡기는 구조의 회중제도 교회가 시작되었고, 회중교회, 침례교회, 그리스도교회 등이 이런 구조를 따른다.

 

성찬 예식의 회복

성찬은 개신교회에서 공교회와 서방교회의 전통인 상시적 예배 예전, 즉 매주 또는 매달 한번 이상 행하는 예배로 회복하였다. 기독교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말씀의 성례와 함께 성찬의 성례는 예배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공교회 전통을 되살린 개신교회의 성찬은 동일한 성도인 성직자와 신자가 함께 마주보며, 매주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예전이 되었다. 공교회의 성찬에서 멀어졌던 서방교회의 기존 성찬은 11세기 이후 교황과 직계를 이루는 계급적 성직자로 이뤄진 로마교회에서 계급적 방식으로 변화하였고, 철저한 성직자 중심의 예식으로 변화하였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천주교회의 성찬 예식은 19세기까지 일년에 두 세번 정도 하던 성례전이었고, 20세기까지도 성직자가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성도를 등에 지고, 예전이 진행되는 동안 성도들을 향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성직자의 참여만이 있고 포도주를 성직자가 마신 이후 빵만을 나눌 때 성도를 향해 섰다.

 

개신교회의 성찬은 성도와 성직자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나누는 상시적 예전으로 회복하였다. 종교개혁 시기인 16세기부터 개신교회의 성찬은 성직자와 성도가 알아듣는 해당 지역 언어로 진행하였고,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어 먹고,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동안에도 성직자는 예배당 십자가를 등에 지고 성도들 향해 서서 성찬 예전과 축사를 하였고, 마칠 때까지 성도들을 바라보았다. 이는 개신교회의 전통이 되어 성찬 탁자에 십자가가 놓이고, 포도주와 빵이 놓이는 모습의 개신교회 성찬대의 모습이 형성되었다. 다양한 형식의 성찬 예전이 풍성하게 발전하였고, 성찬 관련 목회신학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개신교회는 종교개혁 이후부터 성찬을 회복하기 위해서 16세기 특정 절기만 거행하던 천주교회의 성찬 방식을 거부하고, 복음을 전하는 예배로서 성찬과 성도의 요청에 의해 성찬예전을 상시적으로 거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개신교회의 대부분 교단은 성찬을 한 달에 한번 이상을 요구하며, 매주 거행할 것을 요구하는 교단도 있다. 이로 인해 성찬의 변화와 예배의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였고, 예배당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있는 곳에서 성직자가 언제나 거행할 수 있는 예배가 되었다. 현재도 개신교회의 일부 교단에는 성도들이 성찬을 요청할 경우에는 성직자는 성찬이 포함된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천주교회는 이런 개신교회의 성찬 예전의 변화를 인식하고, 19세기 1차 바티칸회의에서 매주 성찬을 교회법으로 정하였다. 20세기 2차 바티칸회의에서는 성찬 방식에서 성도들을 바라보는 개신교회 형태와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의 성찬전례로 변경하였으며, 빵만이 아니라 포도주도 줄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성직자 이해

개신교회이 성직자는 목사이다. 성직자의 이해는 10세기 이전부터 서방교회에서 16세기 종교개혁 전에는 귀족과 유사한 지위를 누렸으며, 성도과 성직자는 엄격한 계급적 관계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개신교회의 성직자인 목사는 만인제사장의 정신에 따라 성도와 평등적 관계의 시각에서 시작된 성직자 이해이다.

 

개신교회는 목사의 신자와 동일한 성도로서 그 직분은 거룩한 사명이라고 인식한다. 이 사명에 대한 관점이 교단마다 차이가 있으나 성도와 목사는 계급적 관계가 아니라, 면허나 직무의 차이로 인식한다. 공교회주의를 따르는 교단들에서는 목사의 면허자격을 지닌 것으로 보며,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단들에서는 직무자격의 차이로 인식한다.

 

이는 절대적 신분제도를 거부하는 평등적 관계를 전제로 하며,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동등한 하나님의 성도이며, 똑같은 피조물임을 밝히는 성직자 이해이다.

(개신교 위키백과 내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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